성범죄, 합의 말고 싸워서 이길 수는 없을까요 — 싸워야 할 사건과 합의해야 할 사건, 그 판단을 가르는 기준
안녕하세요, 다양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가해자 합의를 이끌어 내 온 최재윤 변호사입니다.
이번 글로 성범죄 합의 시리즈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지난 네 편에 걸쳐 합의의 중요성, 합의할 때 빠지기 쉬운 실수, 경찰 조사 대응, 전문직의 특수한 리스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실제로 성범죄 사건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변호사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합의하라는 건 제가 잘못을 인정하라는 뜻 아닙니까. 끝까지 싸워서 무죄 받고 싶습니다."
이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건이 있고, 싸우면 안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판단을 의뢰인 본인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과, 법적으로 무죄인 것은 다릅니다
이 말이 냉정하게 들리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가장 먼저 드려야 하는 말씀입니다.
상담실에 오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 분위기가 그랬어요. 서로 좋은 감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고소를 한 거예요."
"술자리에서 장난이었어요. 그게 추행이라고요?"
"상대방도 동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100% 진심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 자체가 거짓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법은 ‘본인이 어떻게 느꼈는가’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내가 동의라고 생각했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면, 그 진술의 신빙성을 뒤집을 객관적 증거가 있느냐가 핵심이 됩니다.
억울함의 크기가 아니라, 증거의 상태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 피해자 진술의 증거 능력: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은 그 자체로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인지"를 법원이 판단합니다.
싸워볼 수 있는 사건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건에서 합의만 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증거 관계에 따라 충분히 다툴 수 있는 사건이 분명 있습니다.

경험상 "싸워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건에는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었습니다.
싸워볼 수 있는 사건의 패턴 | 합의가 나은 사건의 패턴 |
피해자 진술에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 (시간, 장소, 순서 등이 경찰 진술과 검찰 진술에서 바뀜) | 피해자 진술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고 구체적임 |
CCTV, 블랙박스 등 객관적 영상 증거가 피해자 진술과 배치됨 | CCTV 등 객관적 증거가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함 |
카카오톡·문자 등에서 사건 전후 양측의 우호적 대화 기록이 남아 있음 | 사건 전후 대화 기록이 없거나, 피해자의 거부 의사가 담긴 메시지가 존재함 |
목격자 진술이 피해자 진술과 다름 | 목격자가 피해자 편이거나, 목격자가 없어 피해자 진술만 존재함 |
피해자에게 고소 동기(원한, 금전 목적 등)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음 | 피해자의 고소 동기에 특별한 의심 사유가 없음 |
행위 자체가 법적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음 | 행위 자체가 명백히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본인도 행위 사실은 인정하고 있음 |
※ 구성요건: 법률에서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조건입니다. 예를 들어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해야 성립하며, 단순 신체 접촉이 모두 강제추행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왼쪽에 해당하는 요소가 많을수록 싸워볼 여지가 있고, 오른쪽에 해당하는 요소가 많을수록 합의를 우선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하지만 주의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 표는 참고 기준일 뿐이고, 실제로는 증거 하나의 존재 여부에 따라 판단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CCTV가 없으니 싸울 수 없다"가 아니라, "CCTV는 없지만 카카오톡 대화에서 결정적 정황이 있다"는 식으로 사건마다 핵심 증거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 판단은 본인이 하시면 안 됩니다. 수백 건의 성범죄 사건을 다뤄본 변호사가 증거 전체를 검토한 뒤에 내리는 것입니다.
‘일단 합의’가 위험한 경우
이 시리즈에서 합의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합의를 먼저 시도하면 안 되는 경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합의를 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합의를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합의 시도가 독이 됩니다 | 그 이유 |
혐의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싶은 사건 | 합의를 시도하면 "잘못한 게 있으니 합의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무혐의·무죄를 목표로 하는 사건에서는 합의 시도 자체가 불리한 정황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
피해자가 무고인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 | 상대방의 고소가 허위라고 판단되는 경우, 합의금을 지급하면 "돈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역공의 빌미가 됩니다. 오히려 무고죄 역고소를 검토해야 합니다. |
객관적 증거가 본인에게 유리한 사건 | CCTV, 녹취, 카톡 기록 등이 명확히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합의를 먼저 시도하면, 유리한 증거를 활용할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입니다. |
피해자가 합의를 미끼로 금전을 요구하는 정황이 있는 사건 | "합의 안 해주면 언론에 알리겠다", "SNS에 올리겠다" 등의 압박이 있다면, 이는 공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합의에 응하기 전에 이 정황을 수사기관에 먼저 알려야 합니다. |
※ 무고죄(형법 제156조):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 공갈죄(형법 제350조): 사람을 공갈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사건에 따라 합의가 정답인 경우와 합의가 독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뢰인 본인은 이 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억울하면 무조건 싸우고 싶고, 불안하면 무조건 합의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두 감정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사건의 방향은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결정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전략은 합의와 법적 방어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범죄 사건에서 최선의 전략은, 합의와 법적 방어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합의 아니면 재판’이라는 이분법은 현실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이 두 가지가 병행됩니다. 합의를 시도하면서 동시에 법적 방어 전략을 세우고, 합의가 성사되면 그 결과를 양형에 반영하고, 합의가 결렬되면 법적 방어 전략으로 전환합니다.
단계 | 합의 트랙 | 법적 방어 트랙 |
경찰 수사 | 피해자 측 접촉 시점·방법 설계, 사과 편지 작성, 합의 조건 초안 마련 | 첫 진술 전략 수립, 변호사 동행 조사, 유리한 증거 확보·보전 |
검찰 단계 | 합의 협상 본격 진행, 합의서·처벌불원서 확보 시도 | 불기소 의견서 작성, 법리 쟁점 분석, 증거 보완 |
합의 성사 시 | 합의서+처벌불원서+민사 포기 조항 완비 → 기소유예 또는 약식기소(벌금) 유도 | 합의 결과를 양형자료로 제출, 최적의 결과(불기소·벌금) 달성 |
합의 결렬 시 | 중단 시 재판에서 합의 노력 자체를 정상참작 자료로 활용 | 공판 전략 본격 가동, 증인 심문 준비, 양형 자료 제출 |
이 표가 이번 시리즈의 핵심입니다.
합의에만 올인하면, 합의가 결렬되었을 때 법적 방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속수무책이 됩니다.
반대로 싸우는 것에만 집중하면, 합의 가능한 골든타임을 놓쳐서 형사 처벌이 무거워집니다.
두 트랙을 동시에 깔아놓고, 사건의 전개에 따라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합의와 방어는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동시에 준비해야 합니다. 합의가 되면 좋고, 안 되면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준비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입니다.
유죄가 확정되면, 그 이후의 인생이 바뀝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분들이 최악의 경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시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성범죄로 유죄가 확정되면, 형사 처벌 자체보다 그 이후에 따라오는 것들이 더 오래, 더 깊이 인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유죄 확정 이후 조치 | 내용 | 기간·영향 |
신상정보 등록 | 경찰청 성범죄자 DB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직장, 차량번호, 사진 등 개인정보를 등록 | 선고형에 따라 10년에서 30년간 등록되며, 매년 경찰서에 출석하여 사진 촬영 및 정보 갱신 의무 발생(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 제45조) |
신상정보 공개·고지 | '성범죄자 알림e' 웹사이트에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거주지 인근의 다른 세대에 우편으로 정보가 고지됨 | '성범죄자 알림e' 웹사이트에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거주지 인근의 다른 세대에 우편으로 정보가 고지됨. 법원이 사안의 경중,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공개·고지 기간을 결정. 사실상 거주 지역 사회에 신상이 알려지는 결과 초래.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49조, 제50조) |
취업 제한 |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의료기관, 학교, 학원, 경비업 등 법률로 정해진 특정 기관 및 시설에 대한 취업이 제한됨 | 최대 10년간. 법원이 재범 위험성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취업제한 기간을 결정(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56조) |
전자발찌 부착 | 재범의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이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선고 | 최대 30년간. 24시간 위치 추적, 특정 시간대 외출 제한, 특정 지역 출입 금지 등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 발생(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제5조, 제9조) |
수강명령·치료명령 | 재범 예방을 위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의 수강 또는 이수가 의무적으로 부과됨 | 최대 500시간범위 내에서 법원이 결정.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할 경우 별도의 처벌을 받을 수 있음(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6조) |
민사 손해배상 | 형사 절차와 별개로,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위자료)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를 수 있으며, 형사 합의금 지급 여부와 관계없이 청구 가능(민법 제750조, 제751조) |
※ 신상정보 등록: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2조~제50조에 근거합니다. 등록 의무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 전자발찌: 특정 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및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합니다. 법원의 별도 판단에 의해 선고됩니다.
이 표를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왜 성범죄 사건의 초기 대응이 그토록 중요한지.
벌금형으로 끝나느냐, 실형이 나오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의 일상이 어떻게 되느냐의 차이입니다.
시리즈를 마치며 — 변호사의 진짜 역할
다섯 편에 걸쳐 성범죄 사건의 합의, 초기 대응, 전문직 리스크, 그리고 싸울지 합의할지의 판단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이 글들을 쓰면서 성범죄 합의를 해 온 변호사인 제가 일관되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의뢰인이 현재의 위기를 넘기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도 의뢰인이 자신의 인생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합의를 설계하는 것도, 법적 방어를 하는 것도, 면허와 경력을 지키는 것도, 결국 그 한 가지 목표를 위한 수단입니다.
저희 법무법인 로집사는 사건을 수행할 때 위의 목표를 절대 놓지 않습니다.
위 목표 하에 사건의 단계와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전문가를 배치하고, 합의와 방어를 동시에 준비하고, 형사 절차 밖의 리스크(행정처분, 징계, 언론)까지 통합 관리합니다. 어떤 사건이든 ‘이 단계에서 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즉시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춥니다.
편 | 주제 | 핵심 메시지 |
1 | 합의가 독이 되는 순간 | 합의는 ‘빨리’보다 ‘제대로’. 피해자 심리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
2 | 합의의 5가지 실수 | 처벌불원서 누락, 민사 조항 누락, 시점 지연, 접근 방식 오류, 양식 합의서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합의의 효과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
3 | 경찰 연락 후 24시간 | 피해자 연락 금지, 증거 삭제 금지, 혼자 출석 금지. 첫 진술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
4 | 전문직의 특수 리스크 | 형사 방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면허·징계·언론 등 형사 외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
5 | 싸울지 합의할지의 판단 | 합의와 방어는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동시에 준비하고, 증거에 따라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
지금 어떤 상황이시든, 혼자 판단하지 마시고 전문가와 먼저 이야기 하셔야 합니다.
법무법인 로집사가 첫 번째 상담부터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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